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전쟁 직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박성룡은 1950년대의 시문학사에서 전통주의 경향의 시인으로 분류되곤 한다. 전후의 불안과 허무를 노래하던 당대의 주류 경향의 한편에는 내면세계로의 침잠과 존재의 탐구를 서정적인 어조로 노래하던 시인들이 있었고 박성룡은 비주류 경향 중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서정적이고 전통주의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언어 감각을 지니고 있어 대상을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전면화했기 때문이다.
≪문학예술≫에 이한직, 조병화 등의 추천으로 등단한 그는 당선 소감을 통해 “자칭 현대주의적인 공허에 뜬 방법만은 철저히 배격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이란 것을 중시하고 ‘작품’으로만 행동을 삼아야겠다. 왜냐하면 ‘작품’보다는 ‘생활’이 먼저요, ‘주의’보다는 또 ‘작품’이 먼저이기 때문이다”라 말했는데 이로써 어느 특정한 사조나 유파에 얽매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의 작품 성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상을 보는 눈이 치밀한 만큼 그의 언어 감각 또한 섬세하고 서정적이어서 ‘서정주의’, ‘변형된 리리시즘’, ‘식물성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박성룡은 박재삼, 이동주, 박용래, 이성교, 김관식 등과 더불어 한국적 서정파로 불린다. 그들은 한국적 체질과 서정적 시의 가장 정통적인 소재와 발상법에서 출발함으로써 서정주, 박목월 등의 선배로부터 누구보다도 사랑과 촉망을 함께 받은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과용하지 않고, 우리 것을 아끼며 자연과 토속적 서정의 세계를 사랑했다.”
200자평
자연의 질서에 인간의 삶을 귀속시키고 전통 미학을 통해 우주의 본질을 드러내려 시도한 시인 박성룡. 그의 현대적인 언어 감각에 빛나는 서정시들을 모았다. 언제나 시를 통해 대상, 나아가 우주의 근원과 본질을 바라보고자 했던 그의 시적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지은이
박성룡(1934∼2002)은 1934년 전남 해남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광주서중학교와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중앙대 영문과를 마쳤다. 6세 즈음 광주로 이사해 한학을 한 백부의 권유로 서당에 다녔는데 그의 시 작품의 특징 중 하나인 특유의 한자어 사용은 이러한 배경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1953년 4월 중앙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고 민재식, 박봉우, 정현웅, 주명영 등 광주 출신 시인 지망생들과 어울렸다. 1955년 전남 광주에서 김정옥, 이일, 박이문, 윤삼하, 민재식, 박봉우 등과 동인지 ≪영도≫를 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문학예술≫에 <교외>로 이한직의 추천을 받았고, 1956년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 <교외>가 이한직의 2회 추천을 받았으며, <화병정경(花甁情景)>이 조병화의 최종 추천을 받아 문단에 정식 데뷔한다.
1957년 전남도문화상, 1961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4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1969년 첫 시집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을, 이듬해인 1970년 제2시집 ≪춘하추동≫을 상재했다. 1975년에는 동시 <풀잎>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즈음을 시인으로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박성룡은 28세의 나이에 신태양사 기자로 입사해 그 후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등 여러 신문사를 거치며 기자 생활을 했다. 1962년 1월 이애영과 결혼해 그해 11월 딸 정휘(正彙)를 보았다. 46세 되던 해에 발간한 세 번째 시집 ≪동백꽃≫(1977) 즈음부터 시 세계의 변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신문기자로서 현실 생활을 경험하면서 자연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서 현실적 세계로 좀 더 시야가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초기 시에서부터 줄곧 이어져 오던 전통과 민족정신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져 ≪민족문학대계≫ 18집에 <白瓷를 노래함>(20편의 연작시)을 발표하기도 한다. 이 작품과 <가을의 引力>(≪시문학≫ 1979년 11월 호)으로 1982년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1989년 국제펜한국본부문학상, 1992년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고 1998년 시선집 ≪풀잎≫(창작과비평사)을 간행하는 등 말년까지 시와 함께했던 시인 박성룡은 2002년 7월 27일 오전 6시 40분, 경기도 안양시 안양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엮은이
차성연은 1972년 서울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만주 이주민 소설의 주권 지향성 연구>, <한국 근대문학의 만주 재현 양상 연구> 등이 있다.
차례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郊外
능금
풀잎
FALL
花甁 風景
바람 부는 날
庭園
霧雨
이슬
손
楊貴妃꽃
錯覺 一點
바다에서
車窓 風景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果木
結論
白紙
가을을 듣고 그리기에는
倚子 風景
昆蟲學者
抱擁
家族展
處署記
어느 시골길에서
向日性
메밀꽃
어린이 時間
겨울 대낮
發病記
十二月
自畵像
가을 序說
散策길에서
國際空港 近處에 滿發한 코스모스
어느 老詩人에게
白瓷를 노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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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9쪽) <풀잎 II>
꽃보다
고운 이름.
흙보다
가까운 이름.
풀잎이어.
아 너 홀로
살아 있는 이름이어.